이사야 66장 1-4절 말씀 (예배하는 자)

사66:1-4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하시니라

 

여러분도 아시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두 사람이 죽어 하나님 앞에 나아갔는데, 한 사람은 천국으로 들어가게 되고, 다른 한 사람은 지옥에 갔다고 합니다.

 

연유를 살펴보니, 천국에 들어간 사람은 이 땅에서 택시 운전을 하는 사람이었는데, 일명 총알 택시라 불리우며 거침없이 다녔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이 택시에 탄 사람은 누구나 할 거 없이 두려움에 하나님을 찾게 되며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반면에, 지옥에 간 다른 한 사람은 목사였다고 합니다.

이 땅에서 주의 말씀을 전할 때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깨어있지 못하도록 예배시간에 잠만 재웠다고 합니다.

 

단순히 하나의 우스개 소리로 들을 수도 있지만, 이 이야기 속에는 오늘날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담기워져 있는 것입니다.

 

급할 때에는 주님을 찾다가, 정작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하는 모습에는 우리가 깨어 있지 못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간혹, 주의 종들을 보면 왜 성도들에게 회개에 관한 말씀, 예배에 관한 말씀, 십일조와 같은 헌금에 관한 말씀을 전하지 않느냐라고 물으면 성도들이 듣기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함에 있어서 이와 같은 것은 필요합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한다면, 회개와 예배와 십일조와 같은 헌금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 모습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우리 가운데 거해야 함을 먼저 선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아니한 모든 행위는 외식하는 자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시간 예배하는 모습도 마찬가지입니다.

마땅히 예배하여할 예배자로서, 거룩하게 구별된 성도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이시간 예배함에 있어서 깨어 승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깨어 승리해야 한다는 것은 결국 무엇입니까?
바로, 예배의 대상이, 삶의 모습이 주님 한분만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예배하는 자”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볼 때에 이시간 뿐만 아니라, 삶의 모습 가운데에서 드려지는 예배 또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1.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입니다.

 

구약에서는 제사로 불리우고, 신약에 와서는 예배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되는데 구약의 제사는 레위기 서를 통해 크게 5가지로 나뉘어졌습니다.


잠시 보자면, ‘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가 있습니다.

번제는 일반적으로 짐승을 온전히 불로 태워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솔로몬의 일천번제가 여기에 해당이 됩니다.

짐승을 불로 완전히 태움으로서, 하나님께 대한 완전한 헌신을 상징하는 제사입니다.

 

소제는 육신의 소산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 곡식을 예물로 바치는 것이 됩니다.

이때에도, 예물을 드리는 방법이 고운가루로 드리는 소제하고, 고운 가루를 요리해서 드리는 방법이 있는데 레위기 2장을 보게 되면, 소제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속죄제는 하나님 앞에 모든 죄를 용서 받기 위해 드려지는 제사입니다.
일년에 한번씩 대속죄일을 통해 대제사장이 짐승의 피를 가지고 지성소에 들어가 법궤의 뚜껑인 속죄소에 피를 뿌림으로 죄를 용서 받는 것입니다.

이때의 대제사장의 모습이 예수님의 모형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의미 왕, 선지자, 제사장)

 

속건제는 성물에 대한 죄와 이웃의 물질을 늑탈했을때에 드려지는 제사입니다.
한마디로 보자면, 물질에 관련된 죄를 속제하기 위한 제사입니다.
이때에 범죄한 제물에 1/5을 더한 물질을 드려야 됩니다.

 

눅19:8 삭개오를 보게 되면, 예수님을 영접할때에,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남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배로 갚겠다. 라는 구절이 있는데,
이는 자신의 죄를 깨닫고 드려지는 속건제의 모습으로서 볼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화목제는 감사함으로 드리는 감사제, 서원함으로 드리는 서원제, 자발적으로 드리는 낙헌제가 있는데, 자원제라고 하기도 합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 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화목하게 하는데에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 또한 우리의 죄로 인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화목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구약의 5대 제사를 통해서,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신앙의 모습을 보려고 하는데 오늘날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서, 이와같은 구약에서 드려지는 형식적인 제사의 모습은 사라졌지만, 각 제사의 의미는 오늘날 드려지는 이 예배 속에 모두 담기워져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구약의 제사의 의미와 절차는 모두 다르지만, 그 제사가 드려지는 대상은 하나님이었습니다.

 

우리의 예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서 나아갈 때에, 하나님을 향하여 예배 하여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제사하면,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볼 수 있는데,
이 가운데 하나님은 열납하시는 예배와 열납하지 아니하시는 예배가 있음을 우리는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었지만, 그 예배의 모습 속에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없는 예배라면,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심으로 열납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히브리서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렸음을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온전한 마음으로 믿음으로 드려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 1절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하늘은 나의 보좌요 땅은 나의 발판이니 너희가 나를 위하여 무슨 집을 지으랴 내가 안식할 처소가 어디랴

 

이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 귀환 후에 무너진 성전을 건축하기에 바빴습니다.
성전 건축하는 일에만 신경을 쓰다보니, 그들의 신앙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진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인데, 그들의 신앙이 섬김의 모습에서 성전 그 자체에 집중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몇백병, 몇천명, 몇만명 전도 축제라고 말을 하는데, 분명 필요합니다.


우리는 주의 복음을 들고 전도를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모습이 하나님을 향한 모습이 아니라, 교회의 모습이 되어지고, 사람의 모습으로 집중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늘이 얼마나 큽니까? 그 하늘이 나의 보좌라고 하십니다.
또, 땅의 얼마나 넓습니까? 그 땅이 나의 발등상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예배함에 있어서, 가인과 아벨의 제사를 통해서, 믿음으로 드려지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천지의 주재가 되시는 하늘이 나의 보좌이며, 땅이 나의 발등상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교회라는 건물에서만, 드려지는 형식적인 예배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예배는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어야 하며,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2.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의 모습은 무엇입니까?

 

본문 2절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
무릇 마음이 가난하고 심령에 통회하며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먼저, 마음이 가난해야 한다라고 하십니다.


가난하다는 것은 물질의 가난함, 어떤 육의 가난함이 아닙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표현하는 방법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라는 것이 됩니다.

 

요4장을 통해, 우물가의 여인에 대한 말씀을 알고 있듯이,
마음이 가난하기에, 그 마음을 채우기 위해 땅의 것을 바라보았지만,
예수님은 그 마음 가운데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로서, 마음의 가난함을 채워 주심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땅의 사람들이 종교를 가지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자신의 마음을 채우기 위함입니다.
땅의 것으로 채워지지 아니하는 마음의 가난함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예배의 모습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모습을 통해서, 주의 말씀을 듣기를 사모했던, 그 마음이 우리 마음 가운데 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우리의 심령은 늘 가난해야 합니다.
이 마음의 가난은 세상이 말하는 가난의 기준이 아닙니다.

 

오직 주님을 바라볼 때에, 나의 모습을 고백하고 나의 힘으로 할 수 없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봄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의 예배는 심령에 통회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심령에 통회한다는 것은 한마디로 회개하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시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우리의 예배는 회개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더 이상 회개할 것이 없다, 라고 하는데
잘못된 것입니다.

 

요13장을 통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모습을 통해서 볼 수 있듯이
겸손의 의미로도 볼 수 있지만, 날마다 나의 발을 씻는 회개의 모습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를 한다는 것은 난 죄를 지었어, 죽을 놈이야 라는 의미로서 드려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통해 보게 되면

 

눅18: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이와같은 새리의 고백이 회개의 참된 모습이 됩니다.


요엘 2:13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이때의 회개는 형식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심령에 통회하는 마음, 곧 마음을 찢는 회개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5:4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남자는 태어나서, 3번 눈물을 흘려야 한다라고 말을 하는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된 저와 여러분은 첫째도, 주님 안에서 울어야 하며, 둘째도 주님 안에서, 셋째도 주님 안에서 애통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말씀을 들을 때에, 주님을 바라 볼 때에 말씀에 찔림을 받아 심령이 무너질 때가 있습니다.

 

나의 신세를 한탄하며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주님을 바라볼 때에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그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깨달을 때에, 애통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나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이 우리가 드려져야 할 예배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내 말을 듣고 떠는 자 그 사람은 내가 돌보려니와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임을 말씀을 드렸는데, 이 섬김은 두렵고 떨림으로 나아가는 경외함이 되어야 합니다.

 

예전에도 잠시 말씀을 드린적이 있지만 어린 아이가 성경책을 발로 밟거나, 낙서라도 하게 되면, 눈살을 찌뿌려질때가 있습니다.

 

물론, 성경을 소중하여 여겨야 되지만, 우리의 모습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겉의 모습만을 바라보면서 예배한다면, 이는 참된 예배의 모습이 될 수 없으며, 두렵고 떨림으로 주의 말씀을 듣는 자의 모습이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성경에 쌓인 먼지를 털어버리고, 예배에 참석한다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모든 삶 가운데에서 이 말씀을 들을 때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순종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잠12:3
말씀을 멸시하는 자는 자기에게 패망을 이루고 계명을 두려워하는 자는 상을 받느니라

 

오늘 이시간 예배하는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이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시는 헛 된 예배의 모습은 어떠하다고 하십니까?

 

본문 3절입니다.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살인함과 다름이 없이 하고 어린 양으로 제사드리는 것은 개의 목을 꺾음과 다름이 없이 하며 드리는 예물은 돼지의 피와 다름이 없이 하고 분향하는 것은 우상을 찬송함과 다름이 없이 행하는 그들은 자기의 길을 택하며 그들의 마음은 가증한 것을 기뻐한즉

 

소를 잡아 드리는 것은 헛된 제물로 예배 하였다는 것입니다.


어린양으로 제사 드리는 것은 회개를 의미하며 드리는 예물은 감사를 말합니다.
분향하는 것은 기도를 의미하게 되는데, 이 모든 행위는 자기의 길을 택한 것이며, 가증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예배에 대한 결과가 4절에 나옵니다.

 

본문 4절
나 또한 유혹을 그들에게 택하여 주며 그들이 무서워하는 것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리니 이는 내가 불러도 대답하는 자가 없으며 내가 말하여도 그들이 듣지 않고 오직 나의 목전에서 악을 행하며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는 것을 택하였음이라 하시니라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한주를 살아로는 삶의 모습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여야 하며, 지금 이시간 드리는 예배의 모습 또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가 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5절 말씀을 한 절 더보면,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들아 그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오늘 이시간 예배자로서, 성도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은 말씀 안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로 영광을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새롭게 시작되는 한주의 삶도 살아가실때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 된 예배자로서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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