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6장 39~42절 말씀 (들보를 빼내는 삶)

눅6:39-42절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오늘은 “들보를 빼내는 삶” 이라는 주제를 가지고서 잠시 말씀을 보고자 합니다.

 

이번 주일 가운데 ‘회개의 의미’라는 주제를 가지고 말씀을 보았는데 회개를 한다는 것은 나를 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옷을 찢는 형식적인 회개가 아니라, 마음을 찢는 회개가 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처럼 먼저 자기 자신을 바로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남을 비판하거나 정죄하지 말라 또는 형제 사랑에 관련된 말씀으로도 인용할 수 있는데 이와같은 모습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합니다

 

본문 39-40절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이는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두고 말씀하시는 건데 그들이 예수를 부인하며 영적 눈이 가리워진 자들로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듣지 못하는 신앙의 모습을 향해서, 소경된 자가 소경된 자를 이끌 수가 없다라고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이 됩니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다는 것은 바래새인과 서기관들을 따르며 가르침을 받은 자들 또한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소경된 자들의 가르침만 받아 왔기 때문에 여전히 눈이 가리워진 자와 같을 것이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가운데 티와 들보를 비유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티와 들보는 허물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앞서 회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바라보듯이 나를 먼저 돌아보아야 함을 말씀 드렸듯이 저와 여러분이 누군가를 향해서 그 사람의 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내 안에 있는 들보를 돌아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41절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속담에도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 라는 말이 있는데, 자기는 더 큰 흉이 있으면서 도리어 남의 작은 흉을 본다는 말인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 저와 여러분은 누군가를 향해서 정죄하거나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그럼 이단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 라고 말할 수 있을 텐데, 우리는 구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면 우리는 돌아서며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마7:1-2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우리의 말이 누군가를 향해서 비판만을 하게 된다면, 나 또한 그 비판으로 비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약4:11-12
형제들아 서로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관이로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

 

이번주 말씀에 니느웨를 향한 요나의 마음을 보았는데, 심판 받아야 할 마땅할 백성들이 회개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다라는 그 고백이 우리 마음 가운데 있다라면 우리는 형제를 향한 사랑함으로 용서하는 참 된 회개를 해야 함을 보았듯이 오직 판단하시는 이는 한분이시기에 우리의 말로서 형제를 향해 정죄함이 되어서는 아니된다는 것입니다.

 

일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형제의 의미는 여러가지로 나타나는데, 육의 형제 뿐만 아니라 믿는자들 또한 네 형제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42절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는 자는 외식하는 자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에 기록된 외식하는 자의 모습들이 나오는데, 우리의 신앙이 이와같다라면 우리는 그것을 가감히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하며 기도한다할지라도 이것이 외식하는 자의 모습이 되어버린다면, 우리의 믿는 믿음은 헛됨에 불과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본문 또한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는 것이 아니라, 먼저 내 안에 있는 들보를 빼내기 위해서는 외식하는 자와 같은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들보는 소경된 자의 모습이며, 회개하여야 할 죄악의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주님 앞에 나아와 나의 죄를 고백하며 회개하지 아니한다면 이것이 곧 들보가 되어버리며, 나의 눈을 가려버린채 남의 눈에 있는 티만을 보면서 정죄하려 하며 판단하려고만 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말씀 가운데 순종함이 되어져야 합니다. 순종하는 자에게 축복이 있으며 주의 말씀을 들을 수가 있기 때문인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이 남을 판단하려고만 한다면, 영적 눈이 가리워진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모습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며 순종하지도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시간 예배하는 나의 들보는 무엇입니까?
 
다른 누군가의 예배가 아닌, 나의 예배가 어떠한지가 중요하며, 다른 누군가의 티가 아닌, 내 안에 들보를 빼어냄으로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 들보를 깨닫지 못한 삶을 살아간다라면, 이것이 곧 영적 무지함이며, 외식만을 행한채 살아가는 신앙의 모습과 다를바가 없다는 것입니다.

 

한주의 삶을 살아가실때에, 남의 눈을 바라보며, 그 모습이 나의 모습임을 고백하며, 내 안에 있는 들보를 빼냄으로서 바래새인과 세리의 기도의 비유를 통해서 본 것처럼 주님 앞에 늘 자신을 내려놓으며, 겸손함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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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 BlogIcon 열매맺는나무 2014.12.22 23:47 신고

    다른 이를 보고 거슬리는 점을 발견하게 되면 그 점이 바로 내게 있는 들보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평소 자신의 약점, 모자란 점들을 의식, 무의식 적으로 느끼고 있다가 상대방에게서 보게 되면 거울 보는 듯 한 까닭에 더욱 불쾌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지요.
    '나 닮은 사람이로구나'생각하고나면 덜 불쾌하고 연민마저 느껴지더군요. 게다가 저부터 고쳐야겠구나 하는 생각도 하게되구요.

    • BlogIcon 개인이 2014.12.23 21:01 신고

      너무 공감이 가는 말입니다. 그 모습이 내 모습인걸 알면서도 때론 너보다는 내가 낫다라는 그 자존심 때문에 내 안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아니 보았음에도 부인했을지도 모르지요. '나 닮은 사람이구나' 라는 말 한마디에 한해를 돌아보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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