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6장 1~3절 말씀 (서로의 짐을 지라.)

갈6:1-3절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오늘은 “서로의 짐을 지라”는 주제를 가지고서 보고자 합니다

 

이번 주일 가운데 표면적 신앙이 아닌 이면적 신앙의 삶이 되어져야 함을 말씀을 보았는데, 이는 마음으로 믿어야 함을 보았습니다

 

본문에서 서로의 짐을 지라는 것 또한 겉의 모습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형제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1절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여기서 범죄한 일이라는 것은 죄의 모습을 말하지만, 육의 약함으로 인한 실수나 허물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시말해, 계획적으로 나쁜 마음을 먹은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볼 때에 정죄함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심판하시는 이는 오직 한분이시기에 우리는 정죄함이 아니라,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 잡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볼 수 있듯이 집을 나가 탕자의 삶을 살았던 동생이 돌아올 때에 아버지는 기쁨으로 맞이 하지만, 그의 형은 동생의 모습을 보며 시기를 합니다. 이는 용서하지 못한 것입니다.

 

눅15:28-30
그가 노하여 들어가고자 하지 아니하거늘 아버지가 나와서 권한대
아버지께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나와 내 벗으로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의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이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하여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이땅에 살아가는 사람은 의인은 없는 것입니다.
이는 모두가 실수를 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실수가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일어났을 때에 우리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정죄하려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말을 하며 집안에 있는 또 다른 탕자처럼 정죄를 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마18:21-22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나서 일만달란트 빚진자에 대한 비유를 하시는데, 주님은 우리를 위해 일만 달란트에 빚을 아무런 값없이 탕감하여 주셨습니다.

 

그런데, 일만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은 자는 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만나 옥에 가두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마18:31-35
이에 주인이 그를 불러다가 말하되 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하지 아니하냐 하고
주인이 노하여 그 빚을 다 갚도록 그를 옥졸들에게 넘기니라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서로가 서로를 용서해야 함은 우리 또한 죄의 용서함을 받은 자이기에 그 은혜 가운데 서로를 용서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 1절을 다시 보면,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마7:3-5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형제의 눈에 있는 티를 보면서 그것이 들보라고 말을 하지만, 실제의 모습은 형제의 눈에 들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 눈에 들보가 있음을 깨닫지 못한채 살아가기도 합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모습을 바라 볼 때에 그 모습이 내 모습임을 깨닫고 온유한 심령으로 사랑함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은 깨닫지 못한채 누군가를 향해 정죄만 하려 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울 뿐 아니라 사람에게도 덕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본문2절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서로의 짐을 지는 것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지라는 의미는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인 도움을 주라는 의미로서 볼 수 있다라고 말씀을 드렸는데,
형제를 사랑한다라고 말을 하지만, 그 마음에 사랑이 없다면 짐을 져도 잠시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3:3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한1서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살아가는 자이기에, 이 사랑이 어떠한지를 알기에 믿는 자의 삶은 이 사랑을 가지고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번 주일 말슴 가운데 겉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말하며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을 하지만, 그 모습이 표면적인 유대인이며, 표면적인 할례라면, 착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본문 3절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형제를 사랑하기 보다는 - 서로의 짐을 지기보다는 - 정죄하려만 하며,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 잡아주지 못하는 자들은 먼저 자신을 돌아보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거울을 보지 않은채 남의 모양새만 따진다면, 그것이 누구에게 유익이 되느냐는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 안에서 하나의 지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롬12:3-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이 지체가 서로 모일 때에 서로의 짐을 지며 나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삶 곧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는 삶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시간 예배하는 여러분의 삶이 남을 정죄하기보다는 그 모습이 또 다른 나의 모습임을 바라봄으로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서로가 서로를 사랑함이 될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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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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